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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한강에서 채빙하는 사람들
신병주 교수의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 (62) 한강의 얼음 이야기
겨울 한파하면 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얼음이다. 특히 한강에 얼음이 언다는 것은 강추위를 그대로 대변해 준다. 한강의 결빙(結氷)은 1906년부터 노량진 앞의 한강대교 남단에서 둘째와 넷째 교각 상류 100m 부근에 얼음이 어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즉 이 지점에 얼음이 생겨 물속을 완전히 볼 수 없는 상태를 한강의 결빙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동빙고와 서빙고, 그리고 내빙고
한강에 다리가 없던 시절, 한강의 결빙을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이 노들섬이었는데, 현재 이곳에는 기상청에서 세운 ‘한강 결빙 관측 지점’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강의 결빙을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사람들이었다. 얼음을 떠서 보관하는 빙고는 동빙고와 서빙고를 비롯하여 궁궐 내의 두 곳 내빙고(內氷庫) 등 총 네 곳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한강의 결빙을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사람들이었다. 얼음을 떠서 보관하는 빙고는 동빙고와 서빙고를 비롯하여 궁궐 내의 두 곳 내빙고(內氷庫) 등 총 네 곳이 있었다.
얼음을 채취하는 사람들은 한강의 결빙을 누구보다 기다렸다.
서울에 동빙고와 서빙고의 설립 연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건국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414년 11월 25일 『태종실록』 에는 “각사(各司)의 노(奴)에게 명하여 장빙(藏氷)하게 하여 경기 백성의 역을 대신시켰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태종실록』에는 “신상(申商)이 예조 판서가 되었을 때에 내빙고(內氷庫)를 세워서 여름철 무더위에 어육(魚肉)이 썩지 않도록 대비하자고 청하였다.”는 기록이 있어서 내빙고의 설치의 주요 목적이 어육이 썩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에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1420년(세종 2) 12월 27일 『세종실록』에는 “술 2백 병을 장빙군(藏氷軍)에게 내려 주었다. 얼음이 단단하게 얼지 못하였다 하여, 군정(軍丁)을 모아서 얼음을 저장하게 한 것이다. 상왕(태종)이 빙고가 풍양(豐壤:경기도 남양주 지역에 있었던 태종의 이궁)에서 거리가 매우 멀어서 운반하기가 괴롭다 하여, 바로 이궁(離宮:창덕궁)의 동쪽에다가 별도로 빙고를 만들게 하여 그 폐단을 개혁하게 하였다.”고 하여, 서울로 내빙고를 이전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1420년(세종 2) 12월 27일 『세종실록』에는 “술 2백 병을 장빙군(藏氷軍)에게 내려 주었다. 얼음이 단단하게 얼지 못하였다 하여, 군정(軍丁)을 모아서 얼음을 저장하게 한 것이다. 상왕(태종)이 빙고가 풍양(豐壤:경기도 남양주 지역에 있었던 태종의 이궁)에서 거리가 매우 멀어서 운반하기가 괴롭다 하여, 바로 이궁(離宮:창덕궁)의 동쪽에다가 별도로 빙고를 만들게 하여 그 폐단을 개혁하게 하였다.”고 하여, 서울로 내빙고를 이전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석빙고에 얼음을 옮기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
동빙고는 처음 한강변 두모포(두뭇개), 현재의 성동구 옥수동 인근에 있었는데, 연산군 때 용산구 동빙고동으로 옮겨졌음이, 『연산군일기』의 “‘동빙고는 오로지 제향(祭享)을 위한 것인데, 지금 금표 안에 들었으니, 청컨대 군사를 주어 얼음이 얼기 전에 서빙고 왼쪽으로 옮기도록 하소서.’하니, 전교하기를, ‘그리하라.’ 하였다.”는 기록에서 확인된다.
서빙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에 있었는데, 서빙고가 있었던 자리는 현재 서빙고 초등학교에서 서빙고 파출소가 위치한 일대로 보인다.
19세기 서울의 관청, 궁궐 풍속 등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의 궐외각사(闕外各司) 조항에는 ‘빙고’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동빙고가 두뭇개에 있다. 제향에 쓰는 얼음을 공급한다. 서빙고는 둔지산(屯智山:현재 용산 미군 부대 내에 위치함, 65미터)에 있다. 수라간과 신하들에게 내려주는 얼음을 공급한다. 개국 초부터 설치되어 얼음을 보관하고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동빙고에 옥호루(玉壺樓)가 있는데, 명승(名勝)으로 칭해졌다. 매해 섣달에 낭관(郎官)이 가서 사한제(司寒祭)를 지낸다.”고 하여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서빙고 얼음은 관리들에게 공급했음을 알 수 있다.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 의금부의 죄수들에게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내빙고(內氷庫)에 대해서는 “왕께 얼음을 올리는 일을 전담하였다. 궐내에 설치하였으며, 각 전(殿)에는 ‘남염빙(藍染氷丁:쪽빛을 물들일 때 쓰는 얼음)’ 담당자를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빙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에 있었는데, 서빙고가 있었던 자리는 현재 서빙고 초등학교에서 서빙고 파출소가 위치한 일대로 보인다.
19세기 서울의 관청, 궁궐 풍속 등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의 궐외각사(闕外各司) 조항에는 ‘빙고’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동빙고가 두뭇개에 있다. 제향에 쓰는 얼음을 공급한다. 서빙고는 둔지산(屯智山:현재 용산 미군 부대 내에 위치함, 65미터)에 있다. 수라간과 신하들에게 내려주는 얼음을 공급한다. 개국 초부터 설치되어 얼음을 보관하고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동빙고에 옥호루(玉壺樓)가 있는데, 명승(名勝)으로 칭해졌다. 매해 섣달에 낭관(郎官)이 가서 사한제(司寒祭)를 지낸다.”고 하여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서빙고 얼음은 관리들에게 공급했음을 알 수 있다.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 의금부의 죄수들에게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내빙고(內氷庫)에 대해서는 “왕께 얼음을 올리는 일을 전담하였다. 궐내에 설치하였으며, 각 전(殿)에는 ‘남염빙(藍染氷丁:쪽빛을 물들일 때 쓰는 얼음)’ 담당자를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강 결빙은 한강대교 남단 둘째와 넷째 교각 상류 100m 부근에 얼음이 어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얼음 채취의 과정과 기한제
얼음을 뜨는 것은 한양 5부의 백성들에게 부과된 국역(國役)으로, 이를 장빙역(藏氷役)이라 하였다. 얼음의 채취는 동빙고와 서빙고와 가까운 저자도(楮子島) 근처에서 음력 12월이나 1월 중 새벽 2시경에서 해가 뜨기 전에 실시하였다. 얼음은 네 치 두께로 얼은 후에야 뜨기 시작하였다.
이에 앞서 난지도 등지에서 갈대를 가져다가 빙고의 사방을 덮고 둘러쳐 냉장 기능을 강화했다. 얼음을 뜰 때는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 놓고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채빙하는 공정과 저장하는 공정, 채빙된 얼음을 빙고까지 운반하는 공정은 분리되어 있었다.
조선 성종 대의 학자 성현(成俔:1439~1504)이 쓴 『용재총화』에는 얼음 채취 과정에 대해 “얼음이 네 치(寸) 정도의 두께로 얼면 비로소 얼음 채취 작업을 하는데 그럴 때면 각 관청의 관원들이 서로 다투어 잘하려고 애썼다.
군인들도 많이 참여하였지만 일을 잘하지 못해 촌민들이 얼음을 채취하여 군인들에게 팔았다. 또 얼음에 칡 끈을 묶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강변에는 땔나무로 불을 피워서 몸이 얼은 사람을 보호하였다. 또 의원을 두고 약을 비치하여 다친 사람을 보살폈으니, 사고에 대비함이 철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8월 초가 되면 군인을 빙고에 많이 보냈는데, 빙고의 관원이 군인을 인솔해 빙고의 천장을 수리하고 썩은 써까래와 대들보를 교체하며 무너진 담장을 고쳤다.”고 기록하여 얼음의 보관에 앞서 빙고를 미리 수리하였던 상황도 알 수가 있다.
이에 앞서 난지도 등지에서 갈대를 가져다가 빙고의 사방을 덮고 둘러쳐 냉장 기능을 강화했다. 얼음을 뜰 때는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 놓고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채빙하는 공정과 저장하는 공정, 채빙된 얼음을 빙고까지 운반하는 공정은 분리되어 있었다.
조선 성종 대의 학자 성현(成俔:1439~1504)이 쓴 『용재총화』에는 얼음 채취 과정에 대해 “얼음이 네 치(寸) 정도의 두께로 얼면 비로소 얼음 채취 작업을 하는데 그럴 때면 각 관청의 관원들이 서로 다투어 잘하려고 애썼다.
군인들도 많이 참여하였지만 일을 잘하지 못해 촌민들이 얼음을 채취하여 군인들에게 팔았다. 또 얼음에 칡 끈을 묶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강변에는 땔나무로 불을 피워서 몸이 얼은 사람을 보호하였다. 또 의원을 두고 약을 비치하여 다친 사람을 보살폈으니, 사고에 대비함이 철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8월 초가 되면 군인을 빙고에 많이 보냈는데, 빙고의 관원이 군인을 인솔해 빙고의 천장을 수리하고 썩은 써까래와 대들보를 교체하며 무너진 담장을 고쳤다.”고 기록하여 얼음의 보관에 앞서 빙고를 미리 수리하였던 상황도 알 수가 있다.
매서운 추위에 한강변이 꽁꽁 얼었다.
빙고는 주로 목재로 만들었는데, 영조 대에는 내빙고를 돌로 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빙고에 들어가는 재목(材木)은 허비되는 것이 매우 많은데, 만약 석빙고를 만든다면 오랫동안 비용을 줄이는 계책이 될 것입니다. 청컨대 내빙고부터 시작하게 하소서.”라는 영의정 홍봉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한겨울 추위 속에 얼음을 뜨고 빙고까지 이것을 운반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작업 과정에서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힘든 작업이었던 만큼 일이 끝나면 포상이 따랐다.
세종실록에는 장빙군(藏氷君)에게 술 830병, 어물 1,650마리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이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얼음을 빙고에서 처음 꺼내는 음력 2월 춘분에는 개빙제(開氷祭)를 열었다. 얼음은 3월 초부터 출하하기 시작하여 10월 상강(霜降) 때 그해의 공급을 마감하였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사한단(司寒壇)에서 추위를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올렸는데, 영조는 기한제 이후 얼음이 꽁꽁 얼자 제관(祭官)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한겨울 추위 속에 얼음을 뜨고 빙고까지 이것을 운반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작업 과정에서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힘든 작업이었던 만큼 일이 끝나면 포상이 따랐다.
세종실록에는 장빙군(藏氷君)에게 술 830병, 어물 1,650마리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이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가 있다. 얼음을 빙고에서 처음 꺼내는 음력 2월 춘분에는 개빙제(開氷祭)를 열었다. 얼음은 3월 초부터 출하하기 시작하여 10월 상강(霜降) 때 그해의 공급을 마감하였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사한단(司寒壇)에서 추위를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올렸는데, 영조는 기한제 이후 얼음이 꽁꽁 얼자 제관(祭官)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얼음의 수요 증가와 사설 빙고의 출현
조선후기 숙종 대 이후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얼음의 수요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조선후기의 학자 김창흡(金昌翕)의 문집인 『삼연집(三淵集)』에 수록된 시 중에서 ‘벌빙가(伐氷歌)’는 당시 한강에 얼음이 산처럼 쌓였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대 나라의 큰일 얼음 저장하는 일을 보지 않았는가?
나라의 제사에 쓰이고 관리들에게 나누어 준다오 ...
많은 인부들이 나타나 얼음을 깨어 강 위에 산같이 쌓으니
강 위에 놓인 두 빙고의 십여리에서 서로 바라보네.
이 시에는 얼음이 쌓인 동빙고, 서빙고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라의 제사에 쓰이고 관리들에게 나누어 준다오 ...
많은 인부들이 나타나 얼음을 깨어 강 위에 산같이 쌓으니
강 위에 놓인 두 빙고의 십여리에서 서로 바라보네.
이 시에는 얼음이 쌓인 동빙고, 서빙고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구가 집중하면서 개인의 얼음 수요도 증가하였다. 특히 어물전이나 정육점 같은 곳이나 빙어선(氷漁船) 등에서 활용되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얼음의 공급이 부족하게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면 사적으로 얼음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어 한강 근처에만 30여 개소의 사빙고(私氷庫)가 설치될 정도였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이 2월 11일까지 운영된다.
민간에서의 장빙업(藏氷業)은 많은 이익을 남겨, 상업을 천시하는 양반층에서도 이에 참여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고,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던 풍경은 이제 흑백사진으로만 남아 있지만, 서울시에서는 겨울 기간 동안 스케이트장을 개방하여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2022년 12월 22일부터 시작하여, 2024년 2월 11일까지 운영하는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겨울의 상징 얼음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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