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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물, 물로 보지 마! 깨끗한 물 속에 담긴 과학자들의 고군분투

by 준~ 202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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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물로 보지 마! 깨끗한 물 속에 담긴 과학자들의 고군분투

서울시대표소통포털 - 내 손안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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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분수 물줄기를 맞는 어린이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31) 서울의 그 모든 물과 박송자 박사님

현대는 과학의 시대다. 그렇기에 현대인은 거의 삶의 모든 순간을 과학 연구의 결과를 활용하며 살아간다. 고도로 발달한 IT 기기를 활용할 때에나 각종 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일을 할 때면 당연히 대단한 과학의 성과를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가 과학의 시대라는 말은 그 정도의 범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매 순간, 모든 일에서 과학 연구와 관련이 깊은 삶을 살고 있다. 하다못해 간단하게는 물만 봐도 그렇다.

물은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아주 친숙하고도 너무나 당연하게 자주 접하는 물질이다. 물을 마시고 물을 이용해서 요리를 하거나 몸을 씻고 집을 청소하는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일상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그다지 대단한 과학과 상관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수만 년 동안 해 오던 일이고 인류가 아닌 다른 동물도 비슷한 행동을 수 억 년, 수십 억 년 전부터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따져 보면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현대 사회는 물조차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혹시 물을 마실 때 어떤 물을 마시는가? 분명 “먹을 수 있는 물인가, 아닌가”를 따져 본 다음에 물을 마실 것이다. 현대인은 다른 동물처럼 그냥 적당히 냄새나 빛깔을 보고 괜찮아 보이면 물을 마신다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물을 음용 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에 항상 객관적으로 정밀하게 측정된 과학적인 방법으로 그 깨끗함이 증명되었는지를 따져 본다. 그리고 목적에 맞는 만큼 깨끗함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지를 확인한 뒤 물을 사용한다. 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마셔도 되는 물이라고 과학적 검증이 되었는지를 보고 물을 마신다는 뜻이다.
서울시 관계자가 아리수 수질 검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물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따질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수질을 평가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BOD라는 수치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해서는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이라고 부르는 숫자다.

BOD는 물 속에 녹아 있는 산소 기체가 얼마나 변하는 지를 살펴보는 방법이다. 대부분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물 속에는 적은 양이지만 산소 기체가 녹아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그 산소 기체를 아가미를 통해 빨아들여서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물 속에 사는 눈에 보이지 않은 세균, 고균, 단세포 동물 따위의 다양한 미생물 또한 꽤 많은 종류가 물 속에 녹아 있는 산소 기체를 빨아 먹으며 생활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물 같아도 그 물을 떠다 놓고 가만두면 그 속에 녹아 있던 산소 기체는 조금씩 줄어든다. 물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활동하면서 산소 기체를 조금씩 빨아 먹기 때문이다. 만약 그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새끼도 치고 숫자가 대량으로 불어날 만큼 그 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면 그 활발한 활동 덕택에 물 속의 산소 기체 양은 더욱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이런 미생물들은 물 속에 들어 있는 각종 다양한 찌꺼기나 오염 물질 따위를 먹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는 말은 물 속에 찌꺼기와 오염 물질이 많을수록 그것을 먹는 미생물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숫자가 빠르게 불어나고 결국 물 속에 녹아 있는 산소 기체가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물을 떠다 놓고 시일이 흐르면서 산소 기체가 얼마나 빨리 줄어드느냐를 보고, 그 속의 미생물이 얼마나 활발히 활동하며 살기 좋았는가를 가늠하고, 더 나아가 그 미생물이 좋아하는 찌꺼기, 오염 물질 따위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가늠한다. 다시 말해 산소 기체가 빨리, 많이 줄어 들었다면 그만큼 찌꺼기와 오염 물질이 많은 더러운 물이라는 뜻이다. 보통 간단하게 수질을 측정할 때는 5일 동안 떠다 놓은 물 속에서 산소 기체가 얼마나 줄어 들었는지를 따진다. 그리고 그 줄어든 폭을 바로 BOD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BOD 숫자가 클수록 오염물질이 많은 물이다.

보통 BOD가 1 ppm 보다는 적어야 1급수라고 부르는 맑은 물이고, 6 ppm이 넘어가면 4급수가 되어 누가 봐도 맑다고는 하기 어려운 물이 된다. ppm은 백만 분의 일이라는 의미로 퍼센트로 따지면 0.0001%를 말한다. 그러니까 대략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물을 떠다 놓고 5일 동안 놔두어도 그 속의 산소 기체 농도가 0.0001% 포인트만큼도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미생물이 아주 활동하지 못했을 때를 1급수라고 부른다는 뜻이다. 반대로 물을 떠다 놓고 5일을 놔두었는데 그 속의 산소 기체 농도 0.0007% 포인트만큼 줄어들었다면, 그만큼 산소를 빨아 먹는 미생물이 활개 칠 수 있는 오염 물질이 많은 4급수 이하의 물이라는 뜻이 된다.
우리동네 수질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서울아리수본부 ‘아리수맵’)
2024년 당국에서 발표한 《2023 아리수 품질 보고서》라는 자료를 보면 서울 수돗물을 만드는 재료인 한강물 원수 기준으로 BOD는 1b 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2급수 기준보다도 더 맑다는 뜻이다. ☞ 수돗물품질보고서(서울아리수본부)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해야 이렇게까지 정확한 기준으로 물 속에 산소 기체가 얼마나 녹아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까? 어떤 기계를 이용해서 어떻게 실험을 해야 그 결과가 정확할까? 간편하게 더 많은 장소에서 더 자주 측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것은 모두 심오한 과학 연구의 주제다.

게다가 물의 수질을 따지기 위한 기준이 꼭 BOD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중금속 같은 특이한 오염 물질은 BOD를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알 수가 없다. 만약 물 속에 아주 많은 양의 독하디 독한 비소가 잔뜩 들어 있다면 그 비소의 독성 때문에 물 속에 있는 미생물들 중 많은 숫자가 그냥 죽어버릴 것이다. 말하자면 물 속에 지독한 소독약을 탄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러면 물 속에 있는 산소 기체를 빨아 먹을 미생물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산소 기체는 오래 기다려도 별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즉 BOD 숫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물을 사람이 마셔도 되는 깨끗한 물이라고 판별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BOD 같은 대표적인 기준 이외에도 추가로 물에 들어가서 사람이나 환경을 해칠 수 있을 만한 성분이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를 따로 정해서 따져야 한다. 그리고 그 성분들 각각에 대해 그것을 측정하는 실험 방법을 밝히고 개량해 나가야만 우리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잘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연구의 결과로 서울 시민 모두가 사용하는 그 많은 수돗물을 안전한 기준이라고 확인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 약수터나 곳곳에 개발한 새로운 지하수 샘물이 맑은지 아닌지 먹어도 되는지 확인하는 데에도 이런 과학 기술은 그대로 활용되고 있다. 흔히 약수터 앞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보았는데 마셔도 적합하다는 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그 표 속에 들어 있는 자료들은 불과 100년 전의 과학자들만 하더라도 꿈처럼 생각했던 현대 화학의 위대한 성과들이 모여서 탄생한 표라고 보아도 좋다.

당연히 한국에서 또 서울에서도 어떻게 하면 물이 맑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초창기에는 해외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들을 배워 와서 한강 물과 서울 수돗물에 적용하려고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렇게 배워 온 여러 기술들 중에 무엇이 가장 옳은지, 그 기술을 더 편리하게 개량하고 더 저렴하고 더 정확하게 비슷한 실험들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하며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서울물연구원에서 아리수 수질검사를 하는 모습
그렇게 고생한 여러 과학자들 중에서도 한 사람만 소개해 보라면 나는 ‘KIST’라고도 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최초의 공채 여성 연구원이었던 박송자 박사를 언급해 보고 싶다. 박송자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최초의 공채 여성 연구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 성북구의 홍릉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생기고 1968년에 처음 공채 연구원을 처음 뽑았을 때 1기로 입사한 연구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송자 박사는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과학 기술 연구소의 시작과 함께한 과학자이자 동시에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과학 기술 연구소가 시작하던 그 초창기에도 남성 과학자뿐만 아니라 여성 과학자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 주는 인물이다. 왜인지 아직도 학교에서는 과학은 남학생에게 더 어울리는 전공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는데, 적어도 대한민국 과학의 시작은 그 고정 관념과는 별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박송자 박사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연구원이 되었다가 직장에서 한참 일을 하면서 20년 가량이 지난 1987년 고려대 화학과에서 다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창기 때부터 화학 물질의 정밀 분석 작업을 맡아 왔고 계속해서 정년 퇴임할 때까지 꾸준히 일을 했기에 37년 9개월 20일을 근무한 최장수 연구원의 기록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박 박사는 정밀한 분석 화학 기술을 잘 쌓아 두었기에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도핑 테스트를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치러 내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육상 선수 벤 존슨이 약물 복용이 확인되어 획득한 금메달을 박탈 당한 사건이 매우 유명한데, 바로 그 금메달을 가져간 장본인이 박송자 박사였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한국의 초창기 과학 연구소에서 개발한 정밀 측정 기술이 쌓여 우리가 마음 놓고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바탕이 되었다. 2006년 박송자 박사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10년 이상 전국 대표 정수장 35군데를 매년 4차례씩 돌면서 마실 수 있는 물을 판별하기 위해서 따져야 하는 새로운 물질들에 대한 연구를 꼼꼼히 진행해 왔으며, 여전히 정부 당국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의 기준을 따질 때 박 박사 연구팀의 자료를 활용한다면서 자랑스럽게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과학의 시대인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물 한 방울, 한 방울마다 바로 박송자 박사님과 함께 서울의 과학 연구소에서 지난 한 시대를 밝힌 여러 과학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이 서려 있다고도 말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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