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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권다현의 ‘아이랑 서울여행’ (6) 설렁탕 한 그릇에 얽힌 애민(愛民)의 역사, 선농단
선농단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향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는 수업시간에 배우는 지식 하나하나가 놀랍고 신기한 모양이다. “엄마, 그거 알아요?” 미처 책가방을 받아들기도 전에 종알종알 그날 배웠던 것들을 아는 체 하느라 바쁘다. 엄마도 가만있을 수 없다. 눈을 최대한 동그랗게 뜨고 “저-엉말?” 격정적인 반응을 연출한다. 때론 다음 기술을 날린다. “그런데 이건 알아?” 혹은 “그거 책에서 찾아볼까?” 자연스레 학습을 유도하는 것. 얼마 전 녀석과 농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설렁탕의 유래에 대해 썼던 글을 찾아 읽어 줬더니 당장 먹고 싶다고 성화다.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을 핑계 삼아 아이와 함께 선농단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조상의 농기구 체험과 모내기 체험도 가능한 선농단역사문화관
임금이 직접 밭을 갈다
AI가 등장한 사회에서도 밥 먹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농업국가였던 과거에는 농사를 짓는 일이 그 무엇보다 소중했을 터.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절기에 따라 선농과 중농, 후농이라고 일컫는 세 번의 제사를 올렸다. 선농은 봄이 시작되는 입춘 후에, 중농은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 후에, 후농은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 후에 치러졌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에는 농업의 신을 그린 벽화가 남아 있는데,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하고 한 손에는 벼 이삭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고대농업에서 소가 얼마나 긴요한 역할을 담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이처럼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가 ‘선농대제’란 형태로 정비된다. 선농대제는 왕이 친히 농업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의식이 시작되기 닷새 전부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삼갈 만큼 국가의 중요한 행사였다. 선농대제를 올린 후에는 친경, 즉 임금이 직접 밭갈이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사용되는 밭을 ‘적전’이라 불렀는데, 국왕이 농경의 시범을 보이기 위해 의례용으로 설정한 토지라는 의미다.
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 전농동, 청량리 일대가 조선시대 적전에 속했는데 종묘사직에 올리는 제례에도 여기서 수확한 정결한 곡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왕의 밭갈이가 끝나면 백성 가운데 특별히 선발된 70세 이상의 노인들과 직접 만나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가 아니라 임금과 백성이 서로 소통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국내성에는 농업의 신을 그린 벽화가 남아 있는데,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하고 한 손에는 벼 이삭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고대농업에서 소가 얼마나 긴요한 역할을 담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이처럼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가 ‘선농대제’란 형태로 정비된다. 선농대제는 왕이 친히 농업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의식이 시작되기 닷새 전부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삼갈 만큼 국가의 중요한 행사였다. 선농대제를 올린 후에는 친경, 즉 임금이 직접 밭갈이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사용되는 밭을 ‘적전’이라 불렀는데, 국왕이 농경의 시범을 보이기 위해 의례용으로 설정한 토지라는 의미다.
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 전농동, 청량리 일대가 조선시대 적전에 속했는데 종묘사직에 올리는 제례에도 여기서 수확한 정결한 곡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왕의 밭갈이가 끝나면 백성 가운데 특별히 선발된 70세 이상의 노인들과 직접 만나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풍년을 기원하는 행위가 아니라 임금과 백성이 서로 소통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조선시대에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대제’에서는 임금이 직접 밭갈이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선농단역사문화관의 디오라마 전시.
서울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꼽히는 설렁탕도 이 같은 선농대제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왕이 제물로 올렸던 소를 요리하여 문무백관 및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던 풍습에서 전래됐다는 것. 선농단에서 내린 국밥이라 하여 선농탕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날의 설렁탕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엄마가 해준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흥미로운 모양이다.
임금님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눠준 설렁탕이라
그렇게 맛있나 봐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눠준 설렁탕이라
그렇게 맛있나 봐요!
오감으로 체험하는 선농대제
우리나라 농경문화의 상징적 유적으로 꼽히는 선농단은 선농대제가 이뤄지던 공간적 배경이다. 조선시대 내내 이어지던 선농대제는 마지막 황제인 순종 3년, 일제 주도 하에 폐지되었다. 지금은 사방 4m의 돌단과 제사를 마치면 막걸리를 뿌려주곤 했다는 수령 500년이 넘은 향나무 한 그루만이 당시 풍경을 기억할 뿐이다. 그래도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선농단 곁에 ‘선농단역사문화관’이 들어서 선농대제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앞서 소개한 선농의 시대적 기록부터 선농대제의 내용, 왕이 궁궐을 떠나 선농단으로 향하는 과정과 모습, 임금이 직접 농사의 모범을 보였던 친경의례까지 자세한 설명과 실감 나는 디오라마가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 2전시실에서는 설렁탕의 유래와 함께 선농대제를 위해 차려진 제사상과 복식 등 다양한 유물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제례 동안 연주되었다는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아이는 헤드폰을 낀 채로 한참 집중하는 모습이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농기구와 간단한 모내기 체험 공간도 마련돼 아이들로 하여금 농사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한다.
앞서 소개한 선농의 시대적 기록부터 선농대제의 내용, 왕이 궁궐을 떠나 선농단으로 향하는 과정과 모습, 임금이 직접 농사의 모범을 보였던 친경의례까지 자세한 설명과 실감 나는 디오라마가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 2전시실에서는 설렁탕의 유래와 함께 선농대제를 위해 차려진 제사상과 복식 등 다양한 유물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제례 동안 연주되었다는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아이는 헤드폰을 낀 채로 한참 집중하는 모습이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농기구와 간단한 모내기 체험 공간도 마련돼 아이들로 하여금 농사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도록 한다.
선농대제에 관한 기록과 의복, 제례 동안 연주된 음악까지 체험할 수 있는 선농단역사문화관
보제원 터, 제기동 성당 등 애민의 흔적 가득
선농단 근처에는 백성들을 향한 따스한 애정이 묻어난 공간들이 꽤 있다. 고려대 입구 로터리에는 이곳이 과거 보제원 터였음을 알리는 작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로가 발달하면서 주요 길목마다 역과 원이 설치되는데, 역이 중앙과 지방 사이에 문서를 전달하거나 세금을 수송하는 공간이었다면 원은 이를 위해 이동하는 공용여행자의 숙소 및 식사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세종 때 여행자의 숙소 및 식사를 제공하던 보제원에 ‘진제장’이 추가로 설치됐다. 배고픈 이들의 밥을 먹여주는 곳이란 뜻이다. 한의원도 배치해 가난한 이들을 진료해주기도 했다.
세종 때에는 이곳 보제원에 진제장을 추가로 설치하라는 명이 떨어지는데, 진제장은 배고픈 이들의 허기를 진정시키는 곳 즉 ‘밥을 먹여 주는 곳’이란 뜻이다. 뿐만 아니라 한의원을 배치해 가난한 이들을 진료해주기도 했다. 의탁할 곳이 없는 병자들을 수용하고 행려병자를 구조해 치료하는 등 구휼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자연스레 보제원 주변으로 약재상들이 모여들었는데, 오늘날 제기동에 ‘서울약령시’가 자리 잡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연스레 보제원 주변으로 약재상들이 모여들었는데, 오늘날 제기동에 ‘서울약령시’가 자리 잡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울약령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서울한방진흥센터’
아이와 함께라면 덩그러니 세워진 비석보다는 서울약령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서울한방진흥센터’를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이곳에선 다양한 종류의 전통의약기구부터 전통한의약에서 활용되는 380여 종의 식물·동물·광물성 약재들, 동양철학에 기초한 한약의 제조원리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두었다. 다양한 체험도 운영 중이다.
2층에선 탁 트인 경관과 함께 약초족욕을 하며 쉬어갈 수 있으며, 다양한 체험도 운영 중이어서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도 좋다.
전통한옥의 멋이 살아있는 2층 누마루에서는 국화, 어성초 등 약재가 들어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탁 트인 경관을 바라보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었다 갈 수 있다. 체질에 맞는 다양한 한방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자리하고 있으니 이왕이면 느긋하게 우리 한의약의 매력을 느껴보면 좋겠다.
보제원 터에서 서울한방진흥센터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제기동 성당’도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가 이곳에서 시약소를 운영했던 것.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했다.
시약소는 훗날 성바오로병원이 되었고, 지금은 은평구로 자리를 옮겨 은평성모병원으로 시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제기동 성당은 이 같은 역사와 함께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도 등록되었다.
보제원 터에서 서울한방진흥센터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제기동 성당’도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도회가 이곳에서 시약소를 운영했던 것.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했다.
시약소는 훗날 성바오로병원이 되었고, 지금은 은평구로 자리를 옮겨 은평성모병원으로 시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제기동 성당은 이 같은 역사와 함께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도 등록되었다.
제기동 성당
✔ 엄마 여행작가의 꿀팁!
- 선농단역사문화관·서울한방진흥센터 운영시간은 하절기 10:00~18:00 동절기 10:00~17:00,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에요.
- 선농단역사문화관 입장료는 무료, 서울한방진흥센터 입장료는 성인 1,000원 학생 500원이에요.
- 서울한방진흥센터의 약초족욕체험은 1일 6회 운영되며 1층 안내데스크에서 신청 가능해요.
- 동대문구 문화관광 누리집을 통해 예약하면 기사에 소개된 ‘제기동 골목이야기’ 코스를 해설사와 함께 둘러볼 수 있어요.
- 선농단역사문화관·서울한방진흥센터 운영시간은 하절기 10:00~18:00 동절기 10:00~17:00,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에요.
- 선농단역사문화관 입장료는 무료, 서울한방진흥센터 입장료는 성인 1,000원 학생 500원이에요.
- 서울한방진흥센터의 약초족욕체험은 1일 6회 운영되며 1층 안내데스크에서 신청 가능해요.
- 동대문구 문화관광 누리집을 통해 예약하면 기사에 소개된 ‘제기동 골목이야기’ 코스를 해설사와 함께 둘러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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